추기경들은 이날 오후 교황궁 성 바오로 성당에 모여 성령의 도움을 청하는 성가 '오소서 성령님'(Veni Creator)을 부르며 행렬을 지어 선거 장소인
시스티나 성당으로 향한다. 성당에서는 수석 추기경을 시작으로 모든 추기경이 한 사람씩 복음서에 손을 얹고 비밀 엄수와 외부 개입 배제를 맹세한다.
마지막 추기경이 맹세하고 나면 외부인은 전원 퇴장하고, 선거인 추기경만 남는다.
선거 시작에 앞서 투표와 개표를 담당할
계표인과 검표인을 추기경 가운데서 추첨으로 결정한다.
- 교황
선거 투표지.
교황 후보는 따로 선발하지 않는다. 각자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이름을 투표 용지에 적는다.
투표 용지는 윗부분에 라틴어로 '나는 교황을 뽑는다'(Eligo in Summum Pontificem)는 문장이 인쇄돼 있고, 아랫쪽에는 뽑고자 하는 이의 이름을 직접 쓰게 돼 있다.
추기경들은 투표지에 기표한 뒤 제대 앞으로 나아가 "나를 심판하실 주 그리스도를 증인으로 삼아
나는 하느님 앞에서 당선돼야 한다고 판단하는 사람을 선거합니다"하고 맹세한 후
투표지를 집표함에 넣는다.
투표가 완료되면 계표인들은
투표지에 기재된 이름을 확인하면서 읽어 주고,
선거인 전원이 득표 사항을 기록한다. 계표가 끝나면 투표지와 득표 기록을 다시 점검한다.
투표는 선거인 전체의 3분의 2이상 득표한 사람이 나올 때까지 계속한다.
선거가 첫날 오후에 실시됐으면 한 차례의 투표만 실시하고,
다음날부터는 오전 오후 각각 두 번씩 투표한다.
이렇게 해서 7회 투표할 동안에도 당선인이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하루 동안 기도하고 묵상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 다음에 다시 같은 방식으로 7회 투표를 한다.
이렇게 기도 후 7회 재투표를 세 번 반복했는데도(전체적으로 모두 28회 투표를 했는데도) 당선자가 나오지 않으면,
직전 투표에서 최다 득표자 2인을 대상으로 결선 투표를 실시한다. 이 결선 투표는 3분의 2 이상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된다.
다만 이때 최다 득표자 2인에게는 투표권이 없다.
콘클라베에
참석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아픈 추기경들은 숙소인 성녀 마르타 집에서 투표할 수 있다.
투표지를 태운 연기가 이 굴뚝을 타고 올라가 교황 탄생 유무를 알린다.
【바티칸시티=CNS】
투표지와 관련 기록 일체는 오전 오후 한 차례씩 소각하며,
투표 결과 보고서는 영구 봉인해 교황청 비밀문서고에 보관한다.
투표지를 태울 때는 특별한 화학처리를 해서 당선인이 나오지 않았을 때는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 검은 연기가, 당선인이 나왔을 경우에는 흰색 연기가 나도록 한다.
흰색과 검은색의 구별이 잘 안 돼 초래될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당선인이 나왔을 때는
성
베드로 대성전의 종들도 함께 울리게 된다.
교황 당선인이 선출되면 서열 마지막 부제급 추기경이 교황 전례처장을 불러들인다.
수석 추기경 또는 최고 선배 추기경이 선거인단을 대표해서 당선인의 동의를 구하고,
당선인이 동의하면 교황 이름을 무엇으로 정했는지를 묻는다.
새 교황 이름이 결정되면, 전례처장은 의전 담당 사제 2명을 불러 증인으로 삼아
당선인의 교황직 수락과 새 교황 이름을 증명하는 문서를 작성한다.
당선인이 주교품을 받았으면, 당선 수락과 동시에 교황이 되며,
그 즉시 바로 보편 교회에 대한 완전한 최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당선자가 주교품을 받지 않았으면, 즉시 주교로 서품돼야 한다.
선거인 추기경들이 새 교황에게 경의와 순종을 표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나면,
수석 부제 추기경(장 루이 토랑 추기경)은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발코니에서
새 교황 선출과 교황 이름을 알린다.
"매우 기쁜 소식을 발표합니다. 새 교황이 탄생했습니다. 가장 높으시고 가장 거룩하신 주님,
거룩한 로마 교회의 추기경 (이름)가
(교황명)이라는 새 이름을 가지게 됐습니다."
이어 새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발코니로 나와 로마와 전 세계에 사도적 축복을
내린다
콘클라베(교황 선거), 이렇게 한다
3분의 2 득표자 나올 때까지 … 당선 동의 즉시 종료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13년 2월 28일 오후 8시(한국시간 3월 1일 새벽 4시) 교황직에서 사임하면서 가톨릭교회는 ‘사도좌 공석’(sede vacante) 상태가 됐다.
전 세계의 이목을 모으고 있는
교황 선거 절차에 대해 알아본다.
■ 콘클라베 관련 규정
교황 선출에 대한 규정은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발표한 교황령 ‘주님의 양 떼’(Universi Dominici Gregis)를 따른다.
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7년 6월 11일, 2013년 2월 25일에 각각 자의교서(Motu Proprio)를 발표, ‘주님의 양 떼’ 규정 일부를
수정했다.
콘클라베 참석 선거인은 추기경 중 사도좌가 공석이 되기 전날을 기준으로 만 80세 미만인 추기경들이다. 선거인 수는 최대
120명까지 허용하는데,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지역 출신으로 추기경단을 구성함으로써 교회의 보편성을 드러낸다.
2013년 2월
28일 현재 전 세계 추기경은 207명, 그중 80세 미만 추기경은 117명이다.
영국과 인도네시아 추기경이 이번 콘클라베에 불참하므로, 선거인
수는 115명으로 준다.
- 지난
4일 바티칸에 모인 추기경단이 새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를 준비하는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
콘클라베 개시 일정
‘주님의 양 떼’에서 이번 콘클라베와 관련, 언론의 이목을 끄는 조항은 콘클라베 개시 시점을
명시한 제37조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콘클라베는 교황의 선종이나 사임으로 사도좌가 공석이 된 지 15~20일 사이에 개시해야 한다.
만 15일을 기다리는 것은 아직 로마에 도착하지 않은 추기경들을 위한 배려다.
하지만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월 25일 자의교서를 발표, ‘주님의 양 떼’ 제37조에 “모든 선거인 추기경이 도착하면 선거 개시를 앞당길 권한도 있다”는
문항을 추가함으로써 일정이 앞당겨질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추기경단 수석 추기경(dean of the College of Cardinals)인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은
3월 1일(금) 추기경단(College of Cardinals) 전원에게 콘클라베 소집 서한을 발송했고,
3월 4일부터 매일 두 차례씩 콘클라베
준비를 위한 추기경 회의(Congregation of Cardinals)를 열었고, 여기에서 콘클라베 개막 일정도
결정했다.
■ 콘클라베, 어떻게 진행되나?
교황 선출에 앞서, 추기경단은 지혜와
덕망이 높은 성직자 2인에게
▲ 현재 교회가 직면한 문제점들과 ▲ 새 교황 선출에 필요한 분별력에 관한 두 가지 묵상자료를 요청한다.
첫째
자료는 콘클라베 개시 전에, 둘째 자료는 선거인 추기경들의 비밀엄수 맹세 후에 제공한다.
콘클라베 개시일 오전에 추기경들은 바티칸
성베드로대성전(이나 기타 적절한 곳)에서 교황 선출 청원 미사를 드린 뒤,
오후에는 교황궁 바오로성당에 모여 ‘오소서, 성령님’(Veni Creator) 성가를 부르며 선거 장소인 시스티나성당으로 장엄하게 행렬한다.
추기경들이 수석 추기경을 필두로 1인씩 복음서에 손을 얹고 비밀 엄수와 외부 개입 배제를 맹세하고 나면 외부인은 전원 퇴장하며,
수석 추기경의 선거 개시 동의에 이어 선거인 과반수가 선거 개시에 지장 없음을 판단하는 즉시 선거를 시작한다.
이때 투표와 개표를 진행할 계표인과 검표인도 추기경단 중에서 추첨으로 결정한다.
수석 추기경이
콘클라베를 주재하게 되어 있으나, 수석 추기경이 선거권이 없으면 차석 추기경이,
차석 추기경도 선거권이 없으면 일반적 서열에 따라 선거인 추기경
중 최고령 추기경이 주재한다.
■ 3분의 2 이상 득표하면 당선
투표시 후보는
따로 선발하지 않고, 선거인 각자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이름을 투표용지에 적는다.
투표용지는 상반부에 라틴어로 “나는 교황으로 뽑는다”(Eligo in Summum Pontificem)는 문장이 인쇄돼 있으며,
하반부에 교황으로 뽑고자 하는 이의 이름을 직접 쓰게 돼
있다. 투표는 선거인 전체의 3분의 2 이상 득표한 사람이 나올 때까지 계속한다.
추기경들은 투표지에 기표한 뒤, 두 번 접은
투표지를 위로 치켜들고 서열 순으로 제대 앞으로 나아가
“나를 심판하실 주 그리스도를 증인으로 삼아 나는 하느님 앞에서 당선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사람을 선거합니다”라고 맹세한 뒤 투표지를 집표함에 넣는다.
투표가 완료되면 계표인들은 투표지에 기재된 이름을 확인하며
읽어주고, 선거인 전원이 득표 사항을 기록한다.
계표가 끝나면 투표지와 득표기록을 다시 점검한다. 투표지와 관련 기록 일체는 소각하며, 투표결과
보고서는 영구 봉인해 교황청 비밀문서고에 보관한다.
당선자가 계속해서 나오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규정도 있다. 오전과 오후에 각
2차례씩 사흘 동안 투표했는데도 미결이면 1일간 투표를 중단하고,
기도, 대화, 묵상을 한 뒤 재투표를 7회 실시한다. 기도 후 7회 재투표를 세 번까지 반복했는데도 당선자가 나오지 않으면,
직전 투표의 최다득표자 2인을 대상으로 결선투표를 실시하며, 둘 중 한 사람이 3분의 2 이상 득표할 때까지 양자투표를 한다.
단, 최다득표자 2인에게는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 새
교황 선출 결과를 알리는 굴뚝 연기. 흰 연기는 선출됐음을 의미하는 신호다.
■ 하베무스 파팜, 새
교황이 탄생하였습니다!
선출이 이뤄지면, 수석 추기경이나 최고 선배 추기경이 선거인단을 대표해 교황직 수락 동의를
구한 다음, 동의를 받는 즉시 교황 이름을 묻는다.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등의 이름도 이때 정해진 것이다. 이어 교황 전례원장이 의전담당 사제 2인을 증인으로 삼고,
새 교황의 수락과 그가 택한 이름을 증명하는 문서를 작성한다. 피선자가 당선을 동의하는 즉시
콘클라베는 종료된다.
선거인 추기경들은 새로 선출된 교황에게 경의와 순종을 표하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 다음, 수석 부제 추기경이
밖에서 기다리는 백성들에게
새 교황의 선출 사실과 이름을 이렇게 공포한다.
Annuntio vobis gaudium magnum:
Habemus Papam!
매우 기쁜 소식을 발표하겠습니다: 새 교황이 선출되었습니다!
Eminentissimum ac
reverendissimum Dominum,
지극히 탁월하시고 공경하올 분,
Dominum [이름], Sanctae
Romanae Ecclesiae Cardinalem [성],
거룩한 로마 교회의 추기경 [본래 이름]이십니다.
Qui
sibi nomen imposuit [교황명].
이분은 자신을 [교황 이름]로 명명하셨습니다.
이어 새 교황은
성베드로대성전 발코니에서 로마와 전 세계에(Urbi et Orbi) 사도적 축복을 내린다.
■ 콘클라베 참석
추기경 현황
2013년 2월 28일 현재 전 세계 추기경의 숫자는 모두 207명, 그 중에서 이번 콘클라베에 참석해
교황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교황의 사임일인 2월 28일을 기준으로 만 80세 미만의 추기경 수는 117명이다.
그런데, 최근
영국의 키스 오브라이언 추기경이 자신의 성 추문 의혹에 대해 시인하고 콘클라베에 참석하지 않을 것을 선언했고,
이와 별도로 인도네시아의 전 자카르타대교구장 율리우스 다르마트마드자 추기경이 불참을 통보함에 따라 콘클라베에 참석하는 추기경은 모두 115명이다.
따라서 그 중에서 3분의
2 이상, 즉 77표 이상을 받으면 교황으로 선출된다.
이들 117명 중에서 50명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67명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됐다. 이들을 대륙별로 보면,
유럽 출신이 61명, 라틴아메리카 19명, 북아메리카 14명, 아프리카 11명,
아시아 11명, 오세아니아 1명이다.
국가별로 보면, 80세 미만 추기경은 이탈리아 출신이 28명으로 절대적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미국이 11명으로 두 번째이다. 독일이 6명이고,
스페인과 브라질, 인도가 각각 5명씩이다. 또 폴란드와 프랑스가 각각 4명,
캐나다와 멕시코가
각각 3명씩,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가 각각 2명씩이다.
아시아 대륙의 경우, 인도는 80세 이상 추기경이 2명,
80세 미만이 5명으로 총 7명의 추기경이 있어 독보적이고,
필리핀이 총 3명 중 80세 미만이 1명, 레바논과 중국이 80세 이상과 미만 각 1명씩 2명의 추기경을 갖고 있다.
그 외에 한국, 태국, 이라크가 80세 이상 추기경 각 1명,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스리랑카에서 각각 80세
미만의 추기경이 1명씩 있다.
![]() |
| ▲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 1세 |
남미 출신이 교황이 된 것은 교회 역사상 처음이며, 비유럽권 출신으로는 시리아 출신이었던 그레고리오 3세 이후 천282년 만입니다.
새 교황은 앞으로 사용할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결정했습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새 교황 선출을 알리는 흰색 연기가 피어오른지 약 1시간 20분 뒤인 오후 8시 24분,
우리시각으로는 오늘 새벽 4시 24분 군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새 교황을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수 십만명의 신자와 관광객들이 바티칸 광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나온
프란치스코는 공식 축복행사인 `우르비 엣 오르비`를 통해 전세계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강복을 청했습니다.
"좋은 저녁입니다"라는 인사로 말문을 연 새 교황은 동료 추기경들이 자신을 찾기 위해 `다른 세상의 끝으로 간 것처럼 보인다`는 농담으로
남미 출신 첫 교황 탄생을 알렸습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무엇보다 먼저 전임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위해 기도하고 싶다"며 ""주께서 전임 교황께 강복을 내리시고,
성모님께서 지켜주시기를 다함께 기도하자"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제 전세계 교회를 자비로 이끌 여정을 함께 떠나자"면서 "오늘 시작되는 교회의 여정이 전세계 복음화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앵커] 앞서 잠깐 전해드린대로 새 교황 프란치스코는 교회 역사상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이자 첫 예수회 출신 교황입니다.
새 교황 프란치스코는 누구인지, 취재기자와 함께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질문1] 먼저 프란치스코 교황, 어떤 인물인지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실까요?
[답변1] 네, 프란치스코 교황의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입니다.
1936년 12월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출신 철도노동자 가정의 5남매 가운데 한 명으로 태어난 베르고글리오는
학창시절 꿈이 성직자가 아니었습니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정진석 추기경처럼 일반 대학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순수 과학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만 21살 때인 1958년 성소에 이끌려 예수회에 입회하면서 인생도 180도 바뀌게 되는데요,
산미겔 산호세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산타페에 있는 인마큘라다대학과 부에노스아이레스 살라도르대학에서 문학과 심리학 등을 가르쳤습니다.
1969년 12월 13일 사제로 서품된 베르고글리오는 수도사로서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받아 70년대 후반까지 아르헨티나 지방을 돌며 사목 활동을 했고,
1980년 산미겔 예수회 수도원의 원장으로 발탁됐습니다.
이후 1992년 5월2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주교품과 함께 부에노스 아이레스 보좌주교로 임명된 베르고글리오는 97년에는 교구장 승계권을 가진
부교구장 대주교로, 이듬해인 98년에는 대교구장에 임명됐습니다.
그리고 2001년 2월 21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됐습니다.
독일어와 스페인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질문2] 교황에 선출된 직후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정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답변2] 네, 그동안 많은 교황들은 자신이 존경해온 전임 교황의 이름을 이어받아, 이름 뒤에 몇세라는 호칭을 붙였는데요,
새 교황은 과거에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교황명으로 선택했습니다.
청빈의 대명사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모범으로 삼겠다는 강력한 의지라고 볼 수 있는데요,
교황청 대변인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프란치스코`라는 명칭이 갖는 의미에 대해 "소박하고 박애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새 교황 프란치스코는 평생 성 프란치스코처럼 검소하고 청빈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대주교에 착좌한 이후에도 주교관이 아닌 방 한칸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버스나 지하철로 출퇴근했습니다.
또 비행기를 이용할 때도 이코노미석을 탔고, 요리도 직접 해서 먹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몸으로 실천해온 박애정신도 성 프란치스코의 삶과 비슷합니다. 2001년 에이즈 환자를 방문에 손수 발을 씻겨주고 축복의 키스를 해준 일화가 대표적입니다.
[질문3] 신학적인 측면에서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습니까?
[질문3] 네, 가톨릭 교리에 있어서는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특히 낙태와 안락사에 대해 강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에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동성간 결혼을 허용하려고 하자 `동성부부의 입양은 아이들에게 차별을 주는 행위`라며
강한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성간 결혼은 반대하면서도 동성애자들이 부당하게 차별받아서는 안된다고 말하는가 하면 미혼모의 세례를 거부한 신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등 일정 부분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질문4] 사상 첫 `예수회` 출신 교황이라는 점도 눈길을 끄는데요, `예수회`는 어떤 곳입니까?
[답변4]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수도회 가운데 하나인데요,
1534년 이냐시오 데 로욜라가 프란치스코 사비에르 등과 함께 창립한 예수회는 1540년 정식 수도회 조직으로 교황청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영성수련을 통한 자기 헌신을 생활태도로 표방하고 있는데요, 현재 세계 100여개 국에 226개 단과대학과 종합대학을 설립했고,
4천여 개의 중고등학교와 기타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1954년 진출해 서강대와 광주가톨릭대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시대 만연한 갈등 · 분쟁 대신 평화 · 청빈의 삶에 대한 의지
프란치스코회와 글라라회를 설립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청빈하고 소박한 삶, 평화의 전교자로 유명하다. 온갖 몰이해와 편견이 난무하고, 대화와 화해보다는 분쟁과 갈등으로 점철돼 있는 오늘날 세계 상황, 교회 안에서조차 의견과 견해의 차이가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현대 세계에서 가톨릭교회를 이끌어갈 교황은 평화와 소박하고 가난한 삶을 살았던 프란치스코의 이상이 간절하게 요청되는 것으로 보인다.
고위 성직자로서 스스로 소박한 삶의 표양을 보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의 재위 기간에도 여전히 이어질 이러한 청빈과 평화의 삶, 가난한 이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자신의 교황명 ‘프란치스코’에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아시시에서 태어난 성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가난한 이들에 대한 동정심도 많았다. 1202년 아시시와 페루자의 전쟁에서 포로가 돼 1년 만에 풀려난 그는 병상에 앓아누웠는데 이 기간에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 회개의 삶을 살아갔다.
그는 자신을 회개자로만 여기지 않고 평화의 전도자로도 여겼다. 그는 수도원 안에서만 설교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평화를 전했다. 늘 평화 안에 머물었던 그는 설교하지 않아도 그 모습 자체로 설교가 됐다고 전해진다.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는 소박한 삶에서 드러났다. 그를 가난의 극점에 도달하게 한 동기는 오직 그리스도뿐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가난과 복음 전파에 대한 계시로 알아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그리스도만을 바라볼 것을 누차 강조하며 지상선(至上善)이며 사랑인 가난의 극점을 체험했다.
그리스도를 그대로 닮고자 열망했던 그는 죽음을 2년 앞둔 1224년 라 베르나 산에서 오상을 받았다. 생전에도 이미 살아있는 성인으로 공경받던 그는 1228년 7월 16일 시성, 현재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대성당에 안치돼 있다.
'살아가는 이야기 > 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랑 (0) | 2013.05.07 |
|---|---|
| 서천 희리산 (0) | 2013.04.08 |
| 건강검진 (0) | 2013.03.04 |
| 앗숨 (0) | 2013.02.23 |
| 청양 다락골 줄무덤 성지 (0) | 2013.02.2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