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묵상 129

침묵으로 기도가 농익는 무덤

성토요일 – 침묵으로 기도가 농익는 무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정원이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곳에 모시고 나서, 무덤 입구에 큰 돌을 굴려 막아 놓고 갔다.”(마태 27,60; 요한 19,41.42). 누구나 낙원에서 죽음을 들었고 무덤에서 마친다. 묘원에는 밤낮없이 침묵이 흐른다. 무덤들은 남 욕하고 제 자랑하던 입을 다물고 기도를 배운다. 침묵으로 기도가 농익은 무덤에서 부활이 일어날 것이다.

채찍의 침묵

성주간 화요일 – 채찍의 침묵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주님의 침묵에) 귀를 기울여라.”(이사 49,1). 예수님의 몸에 두 개의 채찍이 번갈아 떨어졌다. 가죽끈에 철편을 달아 만든 여덟 자 채찍이 예수님의 후려쳐 두 번 감으면 세 치 혀가 비웃고 깔깔댔다. 여덟 자 채찍이 눈을 갈기면 불이 번쩍번쩍 튀며 팅팅 눈이 부어오르고 목을 오여 감아치면 숨이 콱콱 막히고 등을 내리갈기면 고꾸라지고 허리를 쳐서 끌어당기면 뱅글뱅글 돌고 오금을 후려치면 고목처럼 쓰러졌다. 세 치 채찍이 빈정대며 위로했다. “힘을 내라, 힘을. 너는 잘 할 수 있어. 너는 하느님의 아들이잖아!” 다음 기회를 노리며 떠난 악마도 속삭였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못하듯이, 너는 매 맞아 죽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채찍에 맞아 ..

아내가 어질면 형제가 화목하다

슬기로움이 어짊만 못하고, 어짊이 거룩함만 못하다. 슬기롭지도 어질지도 거룩하지도 못하면 불효(不孝), 불목(不睦), 불경(不敬)해진다. ‘아내가 어질어야 형제가 화목’(兄弟和合賢妻之德)하거늘 카인과 아벨에게 명처(明妻)도 현처(賢妻)도 경처(敬妻)도 없으니 부모에게 ─ 참 천주께 근심이 되는구나! ‘악처가 효자나 빈방보다 낫다’ 하니 처를 집에서는 남좌여우(男左女右)하고, 무덤서는 남우여좌(男右女左)함을 홍복(洪福)이 아니거든 묘복(眇福)으로라도 여기고 황혼에 감읍(感泣)할지어다.

거룩함

하느님께서 하느님과 비슷하게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만드셨다(창세 1,26.27). 그래서 사람은 악한 것도 더러운 것도 거짓스러운 것도 참지 못한다. 그것을 수족으로 부린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거룩한 사람에게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향로와 기도를 올리는 영혼의 제단이 있다. 그 제단에서 그는 세상 것을 하느님의 것으로, 자기 자신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변모시킨다. 그리고 그는 한 점도 남김 없는 제물이 되어 거룩하신 하느님께 봉헌하고 죽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