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접할때 길흉을 이야기한다.
구약에서 엘리야 예언자가 머문 그 집에 식량이 떨어지질 않아 배고픔을 모르고 살았다.
이때는 길이다 엘리야 예언자가 우리집에 들어와 머물기 시작할때 부터 식량이 넉넉했기에 좋았다.
그러나 외아들의 죽음을 두고는 엘리야를 원망하며 떠나라 한다. 즉 흉이 된것이다.
편견으로 인해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이 떨어진것이다.
요즘은 뭔가 꼬인듯한 시간들이 많이 지나간다.
누구의 탓도 해본다. 불안하기도 하면서 ...
결국은 나의 탓인데도 누구에게로 핑계를 대본다.
신앙생활이 순탄치 만은 않다.
세례동기 베드로 형제님의 전화다. 안부를 전하는가 싶더니 성당 식구들에 대한 불만과 자신의 쇠약함을 이야기 하신다.
그리고 뭔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하신다.성당에 나가신지 꽤 오래되었다고 하시면서 나에게 교우들의 서운함과 불만을 말씀하신다.
나 자신도 나를 추스르지 못하면서도 베드로 형제님께 위로의 말을 건넨다. 신앙은 어떻고 하면서...
그도 나에게 의지를 하려고 하는데 큰 도움은 못드려도 신앙생활하는데 마중물의 역할은 할 수 있는것 같다.
그래 평일 미사라도 참례하고 나 자신부터 죄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보자는 생각을 한다.
보기싫은 사제나 교우들이 있으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사제를 통하여 내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나만 기쁘면 그만이 아닌가.
교우들과 관계도 시간이 흐르면 개선되지 않겠나 싶다.
무슨 친목회도 아닌데... 예수님 만나고 내 죄 씻고 구원 받고 누구를 위해 기도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
같은 것을 놓고 나에게 득이 되면 길이요 해가 된다면 흉이라는 편견을 버려야겠다.
그것은 나에게 주어진 아주 작은 십자가일 것이라는 묵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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