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2일
네비가 다른곳을 안내한다. 길옆 애견센타에서 길을 물으니 자세하게 일러 준다.
입구에는 공사중이다. 아마도 성지 조성중인것 같다.
정수장을 끼고 한참을 오르니 산길이 있는 십자가의 길 ,옆 능선을 따르니 한국 최초의 영세자 묘가 보인다.
연도 소리가 들린다. 자매님들의 연도이다.
이승훈은 마재에 사는 정약용의 누이동생과 혼인하여 그들로부터 신앙에 대한 믿음을 깊은 영향을 받는다.
당대의 석학 이벽과도 교분을 맺은 이승훈은 1784년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한국 최초의 영세자가 된다.
박해가 심해지자 집안의 압력으로 배교를 하였다가 1786년에 다시 교회로 돌아온다.
1801년 신유박해때 참수되고 그의 후손들에게도 이어져 그의 아들 이신규 마티아 를 비롯하여
4대에 걸쳐 5명의 순교자를 배출한다.
이승훈 베드로의 무덤은 지방 문화재 제 63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인천교구 답동 주교좌 성당은 주보 성인으로 베드로 성인을 모시고 있다.
조선교구가 성당 대지를 물색하면서 성당의 역사는 시작된다.
파리 외방 선교회는 발렘 신부를 초대 주임신부로 임명하고 1889년 제물포(현 답동)성당을 설립한다.
1893년에 본격적으로 성당 건립을 시작하여 1894년 청,일 전쟁으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1897년에 조선 교구장
뮈텔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축성식을 한다.
성당 건물은 전면에 3개의 종탑을 갖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제물진두순교성지
이곳은 1868년 순교자들의 행적 증거자 박순집 베드로의 이모 김씨와 남편 손넙적이 베드로 사위 백치문 시도,
이 마리아의 손자 등 4명이 도끼로 참수 당하여 순교한 곳이다.
그외 1871년 이승훈의 증손자 이연구와 이균구 형제, 이승훈의 손자 이재겸의 부인 정씨와 손명현, 신자로 추정되는
백용석과 김아지도 이곳에서 순교하였다.1845년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기 위하 라파엘호 목선을 타고 중국 상해로 떠났던 역사적인 곳이자,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 4명의 수녀가 조선에 첫 발을 내디던 곳이다..
요당리 성지
코로나19로 성전 안에는 출입을 금한다.
신유박해를 피하여 서울, 충청 내포 등지의 신들이 교우촌을 형성하여 갓등이(현재 왕림),은이공소,와 깊게 연계되어 말씀을 전파하였다.
기해년과 병인년에 일어난 박해로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한 신앙의 요람이다.
장주기 요셉 성인과 장 토마스 복자등 여러명의 순교자가 있다.
교회 재정을 확보하기 위하여 민극가 스테파노 성인의 주도아래 이곳에서 운영되었고
민극가 성인과 함께 신앙을 전파하다 순교한 정화경 안드래아 성인이 활동하던 곳이다.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였다가 순교한 앵베르 주교와 손경서 안드래아 얼이 서려있는 곳이다.
장주기 요셉 성인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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