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전국성지순례

행주성당,참회와속죄의성당,김포성당(매괴의모후),진무영성지,갑곳,일만위순교자현양동산(88,89,90,91,92,93)

한진포구 2021. 11. 23. 02:01

11월11일

행주 성당은 1899년 약현성당의 공소로 출발하였으며 순례지이다.

1909년 명동 성당 ,약현 성당에 이어 세번째로 본당으로 설립되었다.

성모 승천을 주보로 모신 성당은 로마에 있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과 특별한 영적 유대로 결합되어 교황청으로 부터

성모 순례지로 지정 받아 정해진 날에 순례를 하면 순례자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파주에 있는 순교 사적지이다.

한반도의 평화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교육하는 곳으로 마련하자는 김수환 추기경의 제안으로 건립되었다.

성당의 외형은 평안북도 신의주 진사동 성당, 내부는 함경남도 덕원의 베네딕도 수도원의 이전 모습으로 재현 되었다.

이기현 베드로 주교는 2018년 북녘의 순교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북한 지역 순교자 기념 순례지로 지정하였다.

 

 

성체 순례 성지 순례지는 신자들이 성체 성지를 방문하여 성체 안에 참으로 살아 계신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성체 조배가 교회 생활의 중심이라는 가르침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성체 성지로 지정된 옛 김포 성당을 찾는 순례자들이 성체 조배를 통하여 주님께서 베푸시는 사랑과 위로를

체험하기를 희망한다고 한다.

 

 

 

진무영 순교 성지

강화 진무영은 해상 경계를 맡았던 군영이다.

또한 박해시  이곳 진무영에서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지이기도 하다.

이곳은 수도 방어의 요충지이다.

신앙의 전교가 육로가 중심이었으나 육로가 막히자 해상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병인 박해시 애오개 회장 최인서 회장,장주기 성인의 조카 장치선,박순집의 형 박서방, 조 서방등이

이곳 진무영에서 순교 하였다.

 

갑곶 순교 성지

1866년 병인 양요때 조선 정부가 프랑스 성직자 9명을 처형한 책임을 물어 갑곳 돈대로 상륙하여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조선 군대의 격렬한 저항으로 프랑스 군은 후퇴 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병인박해가 시작된다.

이 박해로  1868년 최인서,장치산,박서방,조서방등이 진무영에서 순교를 한다.

1871년 최순복,박상손,우유집 등이 갑곳진두에서 효수되었다.

성지에는 순교자 3위비가 세워져  그들의 넋을 기리고 평생 순교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순교자들의 삶을

정리하며 살았던 증거자 박순집 베드로의 묘가 있다.

 

일만 위 순교자 현양 동산

이곳은 순례지이다.

교회는 박해로 순교한 순교자가 적게는 1만,많게는 3만 명의 순교자 있지만 그 이름이 알려진

순교자는 2천 명도 채 되지 안 된다.

우리는 수많은 순교자의 이름 조차 알고 있지 못한 것이다.

2001년 인천교구 주교 최기선 보니파시오는 강화도에 일만 위 순교자 현양 동산을 조성하고 무명 순교자들에거

봉헌하였다.

또한 남종산 요한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덩산에는 침묵의 순례지로 묵주기도,십자가의 길등 다양하게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