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성사 받은지 어느덧 2266일이다.
7년째 접어들었다.
종교에 대한 관심은 이웃 선배님의 신앙생활에 조금은 영향을 받은것 같다.
갯가 생활에 큰 여유는 없었지만 주일 만큼은 세속생활 접고 늘 깨끗한 옷차림에 가족과 함께 교회에 나가시는 모습이
넘 행복해 보였다. 또한 사회생활도 모범 답안지였다.
우리 가정은 어떠했는가?
수산나는 교통이 좋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애들과 함께 1년에 한 두번 대축일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수산나에 대한 미안한 감정도 사실 없었다.
무엇에 이끌려 성당에서 혼배하고 하였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러나 평상시 늘 마음은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면 가톨릭 종교를 늘 선망해왔다.
종교 입문시에는 아마도 사제들의 고난의 길을 걷는 서민적 생활의 모습과 같은 눈높이를 맞출 수 있고
다가서면 위안 받고 마음이 평화로워지는것 같은 느낌이랄까.
암튼 어찌 되었든 기나긴 교리교육 결석없이 받고 세례성사 받은지 73일만에
꽃피는 봄날에 견진성사까지 받은 내가
어떻게 무엇을 추구하며 신앙 생활을 했는지 이 늦은 시간에 되돌아 보고 싶다.
주일 미사도 두 주째 안갔다.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나는 느낀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내 마음 속에 새로운 영혼이 다가서길 은연 중에 바란다.
수산나와 함께 성당에 갔다가 주일미사 마치면 함께 집으로 가길 바뻤다.
미사의 전례는 교리 중에 몸에 배어 있었으나 그 미사의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의미도 모르고
옆사람들 따라서 일어났다 앉았다 헌금 봉투 봉헌하러 한 번 나가고
성체 모시러 한 번 더 나가고 그저 그렇게 시간 보낼뿐이였다.
때론 덥고, 춥고, 신부님 강론 말씀이 솔깃하다가도 뭔 말씀인지 뒤 돌아서면 잊기는 마찬가지였다.
지역이다 보니 안면있는 교우들이 있고 세례동기들이 있으니 외롭지는 않았지만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열심히 다닌 것이 지금에 와서 보니 참으로 신기하다.
함께 교육받고 늘 함께 했던 안 라파엘 형제님, 자매들 얼굴이 오래된 새로움으로
세월을 거슬러 지금도 생각난다.
그러던 어느날 누군가 구역장을 하란다. 알지도 못하면서 대답은 시원하게 했다.
어느 때 쯤인가 세련되고 예쁜 자매님이 독서를 부탁하여 거절하길 몇번 마음에 상처를 입어 눈물까지 흘리셨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듣고 미안하여 사과하고 전례부 가입^^~ 대건회 가입,연령회, 사목회 총무,사무장까정 ㅋㅋㅋ
참으로 짧은 시간중 내 그릇에 넘치는 과한 대접을 받았다.
그중 가장 보람을 느낀 곳이 연령회이다.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연령회
그래서 지금도 그 끈 만큼은 놓지를 않고 있다.
불행히도 연령회는 많이 퇴색되어가고 있다. 댓가없는 봉사인데 물질에 넘 밝힌다.
성당에 들어서면 마음의 안정과 편안함 그리고 주님께 기대어 의지하려는 자세와 느낌은
나는 행복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나와 뜻이 맞질 않는다 하여 그를 기피하고 멀리함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라는 뜻은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을까?
주님께서는 원수까지 사랑하시라고 하시는데...
이제서야 나의 신앙은 내 안에 주님이 계심을 믿고 일치되기를 원하며,
죽음에서의 구원과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인데...
영적 성장에 많은 어려움이 함께 한다.
어렵고 힘들때 냉담하려는 유혹을 이겨 낼려고 신앙관련 서적을 한 페이지, 한줄이라도 읽고 거치장스러워도 늘 곁에 둔다.
외로울때 온화한 모습의 성모님을 생각하며 곁에 있는 성모상에 눈길을 준다.
의지하며 따스한 마음으로 위로 받기를 청하면서..........
▲ 견진성사 자료 덤으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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