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긔약(053)-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겠지만(190419 성토요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
성금요일 오후부터 성토요일 저녁까지는 주님께서 돌아가시어 묻혀 계신 날이다.
오늘은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라는 말씀대로 사람이며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어 땅에 묻혀 계신 날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에덴에서 내쫓으신 다음, 동산 동쪽에 커룹들과 번쩍이는 불 칼을 세워,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신다(창세 3,24).
이때부터 사람에게 화전(火田) 본능이 새겨진다.
불을 두려워하면서도 불을 극복하려는 본능이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에 사제는 불에 타고 남은 재를 두고 이렇게 기도를 바친다.
“하느님, 죄인들의 죽음을 바라지 않으시고 오직 회개를 바라시니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고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 머리에 얹으려는 이 재에 ✠ 강복하소서.
저희가 바로 재임을 알고
먼지로 돌아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사순 시기에 정성껏 재계를 지켜 죄를 용서받고 새 생명을 얻어
부활하시는 성자의 모습을 닮게 하소서.”
그런 다음 사제는 머리에 재를 얹으며 하느님께서 범죄한 사람에게 하신 인간의 비참함(창세 3,19)을 되뇐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인류는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라는 말씀에 따라 먹고살기 위해 이제까지 허덕거린다.
그리고 땀을 적게 흘리면서도 배부르게 사는 방도를 쉬지 않고 찾는다.
화전(火田)이 그중 하나다.
신화적 상상이지만, 에덴동산을 가로막는 ‘불칼’에서 불을 붙여 산야에 불을 지르는 화전농법을 터득했다.
에덴을 가로막는 불을 따다가 세상에 불을 질러 먹고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불은 초목뿐 아니라 모든 것을, 심지어 사람까지도 재로 만들었다.
불이 얼마나 두려운지 알게 되면서 다른 영농법을 찾아낸다.
이른바 물로 농사를 짓는 수전(水田)과 가뭄에도 잘 견디는 곡식을 경작하는 한전(旱田)이다.
수전(水田)은 물난리가 나면 남는 게 없었고, 한전(旱田)은 결실이 오죽짢았다.
하지만 천수 경작을 하는 화전(火田)도, 물난리를 걱정하는 수전(水田)도, ‘가뭄에 콩 나는’ 한전(旱田)도 결실을 하늘에 맡기는 신앙이 생겨났다.
‘농자천하지대본’이 옳은 것도 화전이든 수전이든 한전이든 농부가 하늘에 생사를 맡기고 살기 때문이다.
먹어야 살기에 사람은 곡식을 내는 땅을 떠나 살 수 없다.
그래서 땅은 죽어 묻히는 모태이기도 하지만 하늘에 대한 신앙을 가르쳐주는 어머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어 묻히신 것은 삶이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 허무를 거스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 흙은 인간에게 시작도 끝도 될 수 있다는 것, 곧 생명의 알파요 오메가 무엇인지를 증언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흙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사람이 죽어 땅이 묻히더라도 당신을 품고 있다면 당신처럼 부활한다는 것, 곧 죽음은 끝(Ω)이 아니라 영원의 시작(Α)임을 증명하신다, 오늘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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