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마르코. 1,29-39)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29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018. 02. 04 (일)
출처 매일미사
물심양면으로 부유했고 자식을 잘 두었던 욥이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고 온몸이 고름이 흐르는 처지가 되었다.
처와 벗들은 그런 욥에 대해 이죽거리며 상처를 헤집고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의심하여 고춧가루를 뿌리고 와사비를 발라 싸매준다.
그리고는 모두 “사람 속 알 수 없다, 역겹다.” 하며 머리를 흔들면서 떠나버린다.
홀로 남은 욥은 자기 고통의 무게를 저울로 달 때 마다 다르고, 저울대 끝에서는 추가 곤두서버린다.
욥은 자신의 삶이 왜 갑자기 이상해졌는지, 왜 낯설기 만한지 어리둥절 해졌다.
욥은 이제까지 누리던 것들에 대한 상실과 육체적인 고통 때문이 아리라 이상해져가는 삶의 모양 때문에 괴로웠다.
욥은 하느님과 단절된 채로 가족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세속한테도 이방인, 아니 외계인 취급을 받는 것이 괴로웠다.
가까운 이들 한테 소외되는 것이나 죽음으로 홀로 되는 것이나 그것은 내가 극도로 무의미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활동 첫날, ‘가파르나움에서의 하룻날’(마르 1,21-39) 방치되거나 홀로 되어 무의미해져 가는 인생들과 맞닥뜨린다.
열병에 걸린 시몬의 장모, 마귀 들린 이들, 갖가지 병에 걸린 이들....
병을 죄의 결과로 여기는 구약의 누념(陋念)에 따르면 예수님 앞에 선 병자들은 선민도 이방인도 아니다.
그저 삶이 어느날 갑자기 또는 점점 이상해져버린 죄인들일 뿐이었다.
순례자들에게 말하곤 한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죽어서 갈 곳이 없다.”
“순교자들은 목숨을 내놓고 죽었지만 갈 곳이 명확한 분이다.”
“어찌 어찌하다가 죽어서 갈 곳 없어져버린 인생들, 영원에 대한 신념이 없는 신세들은 어찌해야 하나?”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는 예수님 말씀에 바오로는 포인트 미장을 한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1코린 9,22).
‘앓은 양 한 마리’처럼 그 누구도 살아서든 죽어서든 이상해지지 않고 빠짐없게 된다는 것이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는 말씀대로 산다면....
삶이 점점 이상해지면 욥처럼, 외딴 곳으로 가시는 예수님처럼 홀로됨을 자초하라.
홀로 됨이 어쩔 수 없이 주어지더라도 골이 나서 마음의 그릇을 깨거나 쭈그리지 마라.
욥이나 가파르나움의 병자들처럼 고통으로 옹졸해져가는 마음의 그릇을 하느님께 넉살 좋게 내밀어라.
내 삶에 흠이 있더라도 그것은 구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본디 내게 주신 것을 찾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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