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말씀/오늘의 복음 말씀

그들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분과 함께 묵었다.

한진포구 2018. 1. 14. 00:53

그들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분과 함께 묵었다.( 요한   1,35-42)
   그때에

35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36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38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하고 물으시자,
    그들이“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하고 말하였다.‘라삐’는 번역하면‘스승님’이라는 말이다.
3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와서 보아라.”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41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그리스도’이다.
42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018. 01. 14 (일)

출처 매일미사



아잇적엔 눈도 참 많이 내렸다.

눈 덮인 초가지붕의 처마와 땅이 서로 닿을 지경으로 내렸다.

빈자의 서 마지기이든 부자의 닷 마지기든 평등해졌다.

이따금 정갱이까지 내린 눈길을 밤중에 걸어간 사람이 있었다.

나그네인지 도둑인지 노름꾼인지 눈에 홀린 술꾼인지 이리저리 빠지며 좁은 논길을 간 사람이 있었다.

 

어린양!

흰털에 순해 빠진 모습으로 떠오른다.

어미 양과 목동의 처분에 목숨이 달린 앳되고 양순한 모습은 첫눈같다.

 

흰 눈으로 덮이면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보다 보라, 어린양이다.”더 잘 어울린다.

어린양은 귀여워서 보고 싶고 만져보고 싶은 마음을 일으킨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은 예수님을 바싹 따라 갔다.

그런데 그 어린양이 돌아서서 말을 걸어온다.

무엇을 찾느냐?”

그들은 멈추어 어떨결에 대답한다.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묵는 장소는 일러주지 않고 따라 와서 보아라.”고 한다.

그들은 어린양을 따라가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요한은 오후 네 시쯤이라며 를 명시한다.

낮 열두 시부터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마태 27,45)에 따르면 오후 네 시는 어린양의 수난과 죽음이 완료된 시간이다.

이렇게 어린양과의 만남은 라는 두 축(地平)을 가지고 있다.


내게 어릴적 시골은 숙성된 삶의 오미(五味)가 무엇인지를 자극한 장소이며 시절.

떫은맛을 육미(六味)로 치기하지만 삶에는 혀로 알 수 없는 여섯 번째의 맛이 있다.

그것은 새하얗게 빛나는 어린양(마르9,3)이 일러줄 삶의 맛이다.

하지만 어린양이 그랬듯이(루카 4,22) 누구에게나 고향에선 떨떠름한 맛을 본다.

나도 익지 않은 풋비린내맛보았다.

어린 사무엘처럼(1사무 3,3-9) 듣기는 들었는데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하고 느끼고 행동했다.

 

짚누리 속에서 백일을 지내야 소곡주가 된다.

어두운 굴 속에서 백일 동안 애산(艾蒜)으로 살아남아야 곰이 사람이 된다.

그렇지만 잿빛 낮이거나 밤이면 개강의 개흙과 어둠은 가려지지 않는다.

흑염소인지 백양인지 구분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장소요 시절이었다.


이리저리 세상을 돌며 세월을 지내고 보니 이제 기억이나 마음에 낀 흙탕물이 침전되어 간다.

세월이 흘러도 세상은 여전히 있을 것은 있고 없을 것은 없다.

하지만 나는 삭풍 흔들리며 낡다가 삭아가는 논둑 잡초처럼 변해 간다.

대신에 아잇적 흰 눈으로 평평해진 들녘처럼 굴곡진 내 마음이 평화를 염원한다.

또한,

산 아래 논들을 덮고 있는 눈을 바라보며 마음에 평수나 높낮이가 없었지길 바라고 있다.

흰 눈을 뒤집어 쓴 초가지붕이 수북이 눈 쌓인 땅 위에 코를 박았듯이 내 영혼도 하얀 어린양에게 코를 박고 싶다.

가을이 가기도 전에 숨 가쁘게 을 노래듯이 이제 새하얗게 빛나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크게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