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3주간 화 (용서는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진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 18,21).
“사는 게 죄죠.”라는 할머니의 고백을 “살아있는 게 죄죠.”라고 고쳐야 할 것 같다.
현직에서는 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은퇴해서든 별 볼 일 없는 내가 눈에 띄고 입 여는 것을 싫어하고 미워한다.
내가 살아 있어서 누군가에게 맘죄를 짓게 하니 ‘살아있음’이 죄가 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 달리시어 살아있는 이들을 위해 아버지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신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죄수 하나가 용서를 청한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
이렇게 내가 살아 있기에 누군가로부터 용서를 받아야 하고, 내가 살아 있기에 누군가를 용서해야 한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나의 잘못을 용서를 받고, 나를 미워하는 이들을 용서해야 할지니,
빌지어다!
예수 고상 앞에서 외우는 경
지극히 자애로우시고 선하신 그리스도 예수여,
나 이제 너 지극히 어지신 주께 달아 드리나이다.
그러나 네 몸의 이 같은 상처를 보고 네 가시관을 우러러보오매
참아 부끄럽고 무안함을 이기지 못하나니,
대개 너 이렇듯 혹독한 형벌을 받으심이 나로 인함이라.
과연 너를 이렇듯이 아프시게 한 자 나요,
네 거룩하신 머리에 가시관을 박은 자 나요,
너를 이 십자가 우에 이렇게 몹시 못 박은 자 또한 나로소이다.
크다 네 사랑이여,
어떠한 애정이며 어떠한 인자신고.
내가 죄를 지었거늘 너는 괴로움을 받으사 그 벌을 당하시고,
내가 네 원수 되었으되,
너는 십자가로 나를 네 아들을 삼으시도다.
이렇듯 크신 은혜를 어떻게 갚사오리까.
인자를 이렇듯이 베푸시고,
나를 위하여 고난을 이렇듯이 받아 계시니,
바라건데 온전히 네 사랑의 불로 나를 뜨겁게 하소서.
그제야 능히 너에게 보답하고,
너 우리 진주(眞主)를 위하여 정원(情願)으로 내 생명까지 아끼지 않으리이다.
아멘.